00. 스트라이크. 내리 꽂히는 엄청난 속도의 직구에 진영은 눈만 끔뻑끔뻑 지훈을 바라보았다. 저걸 누가 받아 쳐? 물론 그 누구는 진영이 되어야 했다. 포수가 받아내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진영은 보호구를 착용하고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포수를 쳐다보다가 입술을 굳게 깨물고 배트를 고쳐 쥐었다. 한 번 더? 하는 시늉으로 공을 공중에 던지고 받아내는 걸 빤...
돈은 섭섭하지 않게 넣었다고 했다. 더 중요한 건 돈이 아닌 걸 알텐데도. 두툼하게 손에 쥐어지는 봉투를 만지며 수술실 바깥에 즐비한 의자에 몸을 아예 눕혔다. 봉투를 꺼내 돈 냄새를 맡았다. 이 돈은 지훈의 손에서 나왔으니 지훈의 냄새가 나야 할텐데 사람의 냄새가 아니라 돈 냄새만 난다. 돈을 차마 던질 수는 없어 자켓 안주머니에 대충 꽂아 넣는다. 애써...
단과 대학을 대표하는 누군가는 아무래도 그 단과 대학의 총학회장이다. 그리고 여러 의미로 박지훈은 총학회장이라는 직책이 아니어도 대학 내에서는 유명인사였다. 그런 박지훈의 임기도 벌써 몇 달 남지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모두가 박지훈이 처음으로 당선되고 단대 건물의 대강당에서 했던 선언을 잊지 못한다. "모두 사랑하세요." 보람 씀 "진영아, 이번 협주 ...
'그'를 무어라고 부르면 마땅할까. 형제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수정인용 충동적이었다. 지훈이 손을 들어 진영의 고개를 저의 입술 위에 짓누른 것은. 진영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뭐해? 뭐하는 거야? 어……? 지훈이 천천히 진영의 입술을 혀로 더듬었다. 눈은 감지 않았다. 진영은 움찔거리며 입술을 조금 ...
낯간지럽지만 일단은 박지훈이 고르곤졸라인지 뭔지 하는 걸 먹고 싶다고 해서 여자와 남자, 이렇게 짝지어지거나 아니면 여자들끼리 온 사람들 틈에 유일하게 남자끼리 온 사람들로 섞이게 되었다. 가게 안은 분위기 조차가 자주 가던 그런 곳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런 곳은 데이트 하러나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평생 데이트 한 번 못 해 봤으니 와 봤을 리가 만무...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집에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 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
왠지 모르게 누우면 현관이 보이는 원룸에서 나는 형과 같이 누워 있었다. 지훈이 형과 눈이 마주치고 급하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잠깐 인사를 하는 말 소리는 있는데 받는 소리는 없더니, 맞은 편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이라 동기들로 구성되어 자리가 조금 남았는데, 기어코 형이 내 맞은 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거였다. "아, 선배, 얘...
멀리서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 보다 눈을 질끈 감고 우선 몸을 돌려 섰다. 더 이상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형은, 이미 나랑 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나 혼자 사과니 뭐니 생각을 해도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었던 거였다. 형과 나는 끝이 난 관계가 되었다. 내가 해명할 기회도, 형이 사과할 기회도, 그 모든 것 없이. 완벽하게 아예 모르던...
왜 키스했을까? 물음은 자꾸 내 머리 한 구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추위는 더해지고 그에 비례해 나는 점점 그 사잇길을 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그 밤에 지훈이 형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그 사실은 맞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빈도는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냥 형은 나와 키스가...
그 날 내가 그 글을 지웠어야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고 그 당시 나는 박지훈을 매장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게시글이 오히려 빌미 삼기 좋아 그러지 않았었다. 그 계기로 박지훈은 몇 번이나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게시글 언제 지울 거냐, 차라리 다른 글을 올려 묻어라, 수정이라도 해라, 등의 내용이 담긴 예의와 무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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